결혼한지 20년이 다되어 간다.
무던히도 아내가 고생을 했다.
첫 목회지는 섬이었다. 전남 완도에서 1시간 가량을 배 타고 들어가야 하는 청산도이다.
배불둑이 아내를 데리고 간 곳이다.
그곳에서 큰놈이 태어났다. 2년간 죽도록 고생시켰다. 달팽이를 키우게 했고, 도농직거래를 해야 한다고 마늘을 다듬게 했고, 메추리를 사육하게 했다.
2년여 만에 섬을 탈출하여 도시 목회를 한답시고 화곡동에 개척을 하고는 선교 놀이방을 선물로 주었다. 그것도 시간제니, 24시간제니 하면서 고생을 시켰다.
화곡동에서 2년 반만에 김포 농촌으로 옮겼다. 천막을 짓고 교회를 이전하고, 방한칸짜리 그래서 결혼때 아내가 준비해 온 장롱 다리를 잘라야만 했다.
4년 반만에 상가 입주를 했다. 그러나 지하. 그곳에 둥지를 틀고 살아야했고, 습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살게했다.
할만 할 때에 필리핀으로 선교가자고 제의했다. 싫다고 하는 것을 억지로 끌고가다시피하여 선교사 생활을 4년, 그곳에서도 가만히 놔두질 아니했다. 하숙을 하면서 생활을 했고, 선교사라고 하는 나는 선교비를 받아 생활비로는 주지 않고 활동을 했다. 바기오라는 높은 산 속에서 살면서 아내는 하혈을 하기 시작했고, 한번이 수술도 했다. 낮은 지역을 찾아 앙겔레스라는 곳으로 이사했다.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 국내로 들어왔다. 2004년 3월 30일에 말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잘 살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아내를 죽도록 고생시키고, 현재는 작지만 교회건축도 했으나 긴장이 풀린 탓인지, 너무 고생한 탓인지 온몸이 아프단다.
그래서 최근에 생각한 것이 맛사지를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아내에게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맛사지를 해 주는 것.
내가 훨씬 많이 손해를 본다. 왜냐하면 아내를 안마를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같이 목욕을 하고, 촉촉한 바디에 내가 먼저 아내의 등을 맛사지한다. 30분 시간이 흐르면 자세를 바꾼다. 아내가 나를 맛사지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접촉이라 했던가?
스킨십을 통해 우리 부부는 상당한 서로의 감정이 되 살아 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할 충분한 시간도 되고 말이다.
언제 이렇게 이야기 해 본 경험이 있던가?
같이 목욕하느라 30여분, 서로 맛사지 하느라 60여분, 물론 매일 이렇게 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일주에 2-3회를 하기로 했다.
아직은 익숙지 못하여 대화중에 서로의 사랑을 고백하거나 그렇지는 못하다.
그러나 서로를 향해 수고했다느니, 고생했다느니, 둥짝이 다 굳었으니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느니///
아이들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교회 이야기도 그렇고,
성도들 이야기도 그렇고,
결국 부부간에 맛사지를 하면서 대화의 물꼬가 트였음을 확인하였다.
최소한 이 시간 만큼은 별의 별 이야기를 다 한다.
평상시 같으면 지겨우니 그만하라고 했을 법도 한데 말이다. 이 때 만큼은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랑이 별거냐!
대화가 별거냐!
맛사지 하다보니
사랑이 만들어지고 있고,
스킨십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며 이해하고 있고,
서로응 위하는 대화들이 하나씩 늘어가는 것을 보면 반드시 우리 부부는 신나는 부부가 될 수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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