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와 성결
(로마서의 재 구성에 관한 연구)
최근까지 로마서를 보는 시각은 다양하게 제시되어져 왔다.1) 이런 다양한 시각은 로마서를 쓴 분명한 목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2) 그 목적 이외에 삽입되어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주제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까지 중요하게 취급되지 못했던 다른 주제를 통하여서도 로마서를 충분히 분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성결 사상을 살펴보려는 것이다.3) 최근에까지 로마서에서 성결이라는 주제를 다룬 연구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성화”(Sanctification)라는 타이틀로 6-8장까지의 내용이 주로 연구되어졌음을 볼 수 있다. 헤르만 리더보스는 그의 바울 신학에서 역시 이 부분을 다루고 있는데 그는 하나님 중심적 관점에서의 성화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로마서에 나타난 성화에 대한 것은 큰 중심적 주제 속의 인용되는 연구에 제한되었다.4) 즉 전체 로마서의 구조 속에서의 연구라기보다는 단편만을 그 대상으로 삼아 왔음을 볼 수 있다. 로마서는 전체적 흐름이 성결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원래적 의도가 무엇인지를 찾는 것은 모든 연구자들의 깊은 관심사이다. 비록 바울이 이 글에서 성결 사상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고자 했던 목적은 아닐지라도 그의 가르침 안에는 분명히 성결 사상의 흐름이 만연되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흐름은 일목요연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따라서 이 연구의 목적은 그 흐름을 재구성하는데 있다.
이를 위하여 본 연구에서는 먼저 바울이 로마서에서 다루고 있는 성결이라는 용어를 살펴보고, 둘째는 서신의 목적 안에서 나타난 성결을 검토하며, 셋째는 바울이 사용한 중요한 신학적 진술과 성결과의 관계를 논함에 있어 성결의 본문인 12:1-2절을 집중 분석하고, 마지막으로 로마서의 전체 문맥 속에서 그의 성결 사상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로마서 전체에 흐르고 있는 성결 사상을 재구성 할 것이다.
1. 바울이 사용한 성결용어 고찰
바울은 로마서에서 성결이라는 용어를 빈번히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희소 가치성으로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5) 성도를 지칭할 때 6회 ἁγίοις(1:7, 15:25, 31), ἁγίων(8:27, 12:13), ἁγίους(16:15), 성경을 지칭하거나 άγίαις(1:2) 율법이나 계명의 거룩성을 말할 때 ἅγιος(7:12), ἁγία(7:12), 처음 익은 곡식가루의 거룩함과 뿌리가 거룩함을 말할 때 ἁγία(11:16), 성령을 지칭할 때 최소 5회 άγιωσύνης(1:4), ἁγίω(9:1, 14:17, 15:16), ἁγίου(15:13), 성도가 거룩함에 이를 것을 권면함에 2회 ἁγιασμόν(6:19, 22), 하나님께 예배 할 때 자세로서의 거룩함을 나타낼 때 1회 ἁγίαν(12:1), 이방인이 성령 안에서 제물로 드려지는 것을 비유하여 그것이 거룩하다는 의미로 1회 ἡγιασμένη(15:16), 성도들의 교제가 거룩함을 나타낼 때 1회 ἁγίω(16:16)로 사용되고 있다. 성결을 나타내는 모든 단어의 기본 단어는 άγιος이다. 바울이 이 단어를 어떻게 이해하며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1) 하나님께 구별된 것으로서 사람(성도)을 말할 때 사용되었다. 성도를 지칭한 것은 ἁγίοις(1:7, 15:25, 31)로 로마 교회의 성도를 말할 때 1회 사용되었고(1:7) 예루살렘 성도들을 말할 때 2회 사용되었다(15:25, 31). 또한 ἁγίων(8:27, 12:13)는 일반적인 성도를 말할 때 사용하였으며, ἁγίους(16:15)는 가정 교회 모든 성도를 가리킬 때 사용하였다. 바울은 성도를 지칭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것”(1:6), “부르심을 입은 자”(1:6, 7),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1:7), “의인”(1:17), “예수 믿는 자”(3:26),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이를 믿는 자”(4:24),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5:1),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5:9), “화목된 자”(5:10),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5:17), “예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자”(6:4),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6:11), “은혜 아래 있는 자”(6:14), “의의 종”(6:18), “하나님의 종”(6:22), “영을 좇는 자”(8:5), “그리스도의 사람”(8:9), “성령 안에 있는 자”(8:9), “하나님의 아들”(8:14), “양자의 영을 받은 자”(8:15), “하나님의 자녀”(8:16, 21), “하나님의 후사”(8:17),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8:28),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8:28), “하나님의 택하신 자”(8:33, 16:1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10:13), “하나님의 백성”(11:2),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11:17), “그리스도의 지체”(12:5), “내 사랑하는 자”(12:19),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14:18), “강한 자”(15:1), “동역자”(16:3, 9, 2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16:7, 11), “형제”, “자매”(16:1), “우리”, “너희” 등으로 부르고 있다. 로마서에서 성도를 가리킨 이 모든 말들을 종합하면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도록 구별되어진 백성이다. 즉 그리스도의 대속에 근거하여 죄가 도말되어졌고, 내재하시는 성령의 능력에 따라 변함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를 노력하는 사람이다. 성도는 섬기기 위하여 구별되고 성별된 사람이다. 따라서 성도가 된 사람은 날이면 날마다 성도로서의 삶을 살기위하여 노력해야 한다.”6)는 헨드릭슨의 표현이나, 로저 보웬이 “이 낱말에는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이 포함되는데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며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 같이 기독교인도 거룩해야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위한 백성이 되기 위해 애굽으로부터 구출 받은 것처럼 기독교인도 하나님을 위하여 따로 구별되었다는 생각이다.”라는7) 성도에 대한 해석과 성결자로써의 의미부여는 정당하다. 곧 성도의 삶은 성결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2)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것이 성결한 것이라고 말한다. 율법 νόμοσ ἅγιος(7:12)과 계명 έντολή ἁγία(7:12)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거룩하다고 하였다 γραφαῖς άγίαις(1:2).8)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다. 이는 구약을 말하며,9) 거룩한 것이다.
3) 성령을 지칭할 때 바울은 성결이라는 의미를 사용하였다 άγιωσύνης(1:4).10) 이 단어 성결은 신성과 동일한 것이다.11) “성결의 영”은 성령에 대한 히브리적 표현방식이다. 바울은 그것을 헬라어로 그대로 옮긴 것이다.12) 또 다른 표현은 πνεύματι 또는 πνεύματος ἁγίω(9:1, 14:17, 15:16), ἁγίου(5:5, 15:13) 로서 정확하게 표현 한다면 “성결의 성령”, 또는 “거룩한 성령”이다. 성령에 대한 이 칭호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주는데 그것은 성령에 대한 의미 때문이다. 마치 “진리의 영”(요 14:17),13) “보혜사”(요 14:16) 등과 같은 성령의 칭호를 성경에서 보는 것과 같다.
바울의 성령 이해에서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성령의 특질로서 성결 영이다. 이것은 성령을 표현한 말에서부터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성령을 “성결의 영”(1:4), “하나님의 영”(8:9, 14), “그리스도의 영”(8:9)등으로 나타내며, 그 성령의 기능으로서 마음에 할례를 줌(2:29),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음(5:5), 예수를 부활케 하심(1:4, 8:11), 성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임(8:11),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8:26),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심(8:26, 27), 증거 하시는 성령(8:16, 9:1)등으로 기록하였다. 이러한 성령에 관한 바울의 기록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성령을 이해 할 수 있다.
첫째, 성도는 성령 안에 있다(8:9).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8:9).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한다(8:16). 이러한 성령의 역할, 또는 활동은 성도와 깊은 관계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성령은 성도를 성결케 하는 기능을 가진다.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고”(8:27), 그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나는 “성도의 거룩”이다(12:2).14) 또한 이러한 성결케 하는 성령의 기능은 칼빈의 주석에서도 보여 진다.15)
셋째, 성령의 호칭으로서 “성결의 영”이라고 부르고 있다.
4)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려진 사물을 지칭 할 때, 그리고 남겨진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킬 때 거룩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처음 익은 곡식가루가 거룩한즉 떡 덩이가 그러하고” ἁγία(11:16),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 ἁγία(11:16). 모든 것의 첫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는 구약의 전승(신 15:17-21, 민 5:17-21)에 따라 그것은 거룩하다. 또한 첫 것으로 만든 떡 역시 하나님께 드림으로 거룩한 것이다. 이 구절은 곧 성별의 의미를 나타낸다. 칼빈도 이 구절의 주석에서 “구별”의 의미를 4회나 사용하고 있다.16) 후반절은 이사야 6:13절의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라는 표현에서 빌어 온 것으로 보인다.17) 그 뿌리를 통하여 새로 난 가지가 거룩한 것이다.
5) 성도가 하나님께 예배 할 때 자세로서의 거룩함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ἁγίαν(12:1).18) 그 자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 특히 12:2절에서 무엇이 거룩한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것이 거룩이다. 이 구절을 분석하면 어떤 것이 성결인지를 보여준다. 성결은 첫째 이 세대를 본 받지 않는 것이다. 둘째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셋째 변화를 받는 것이다.19) 넷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다.
6) 거룩함은 인간의 의지에 있음으로 그 거룩함을 취득할 것을 권면함에 사용되었다 ἁγιασμόν(6:19, 22). 성도가 거룩함에 이르는 방법은 “지체를 의의 종으로 드리는” 것이다. 22절은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은 것, 곧 구원 받은 것을 말한다. 이것을 종합하면 구원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εἰς σωτηρίαν παντί τῷ πιστεύοντι<to salvation everyone to believing : 1:16), 정확하게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이다.20) 따라서 이것은 인간의 의지(믿음의 행위)로 성결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함을 볼 수 있다.
2. 서신의 목적 속에 나타난 성결
바울의 로마 방문의 첫 번째 목적은 1:8-13절에 나타난다. 특히 1장 13절은 바울이 로마를 방문하고자 했던 시기에 왜 가려고 했는지를 밝히는 문절이다. 헨드릭슨은 이것이 실제 로마서의 집필 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21)
여러 번 로마로 가기를 원했던 바울이지만 가지 못했음을 말하면서, 그 방문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방문 목적은 방문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이루지 못했으나 결국 이 편지를 통해서 로마 교회가 그 열매를 맺게 하려는데 있는 것이다. 이 열매가 무엇인가? 에 대해서는 견해의 차가 있다. 헨드릭슨은 이 열매를 구원 받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흑암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옮겨진 것을 말했다.22) 그러나 이것은 올바르지 않다. 여기에서의 열매는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라는 말에 혼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즉 다른 이방인이 구원의 열매를 맺은 것 같이 너희 중에서도 열매(구원의)를 맺게 함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이렇게 해석되어져야 한다. “다른 이방인 중에서도 구원 이후에 열매를 맺음같이”로 말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너”, “너희”라고 표현한 거의 모든 말은 이미 공동체 안에 있는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23)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는 “열매”는 구원의 열매가 아니라 구원 이후의 열매를 가리킨다. 비록 헨드릭슨이 시발점은 달리하고 있지만 5-8장을 “효과적인 열매를 맺는 것”24)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서신의 목적과 일치하고, 비록 브루스가 5장은 제외하지만 6-8장을 “성결의 길”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25) 첨가하면 그것은 곧 구원 받은 자인 성결자가 열매 맺는 삶으로서의 성결의 길로 가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11절에서 역시 바울은 자신이 로마교인들 보기를 원하는 바가 있는데 그것은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줌으로 인해 “그들을 견고케 하려는” 목적이 실려 있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과 함께 피차 믿음을 인해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는 것이다.
신령한 은사는 성령의 은사를 말함이요, 열매는 결국 성령의 열매를 말함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바울의 강조는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성령의 은사를 통한 열매 맺는 삶”이다.
두 번째 서신의 목적은 선교적 목적이다. 이것은 로마서의 핵심 목적이다. 이 선교적 목적 역시 바울의 성결 사상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바울은 로마 교인들로부터 자신이 서바나로 선교사 파송을 받기를 원하고 있다.26) 이것은 방문 목적이기도 하다. 서바나를 가기 원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이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요,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그곳에 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구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의 논증이 15장 14-33절에 나타나 있다.
이 논증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 논증의 핵심이 분명 서바나로 가려는 이유와 목적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목적 안에서 핵심이 되는 단어는 16절에서 발견되어 지는데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한 헨드릭슨의 주석은 다음과 같다.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 들였을 때 바울이 이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것이거나, 아니면 개종된 이방인들이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27) 그러나 R. M. Edgar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제물이 되게 하는 것, 즉 이방인들로 말과 행동에서 순종케하고 마음과 생활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도록 하는 것이 구원의 위대한 목적이다.”28)고 함으로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은 구원으로 해석한다. 뿐만 아니라 구원 이후의 신앙인의 모습(헌신하도록 하는)을 그리고 있다. 논자는 에드갈의 해석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즉 이 구절의 의미는 구원과 관련하고, 그 구원은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는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바울은 또 서바나로 가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일을 위한 자신의 계획에 동참 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29)
이 본문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로마 교회의 능력을 확신(14절)
(2) 이방인을 위한 자신의 사역을 다시 확인시킴(15-16)
(3) 자신의 사역에 대한 부가적 설명(17-21)30)
(4) 방문의 목적(22-24절)
(5) 로마 방문 전에 자신이 해야 할 일(25-28절)
(6) 로마 방문 전 자신의 계획에 대한 기도 요청(29-33절)
여기서 (2)와 (3)은 서바나로 가려는 목적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왜 내가 서바나로 가야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서 서바나의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자들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즉 16절의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구원)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것”이다. 보웬의 16절에 대한 해설은 정당하게 보인다. “비록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비 기독교인들인 유대인들이 그들을 거룩하지 않다고 여길지라도 그들은 성령에 의하여 성화되었다. 즉 거룩하게(또는 성별) 되었다.”31) 뿐만 아니라 칼빈의 해석은 더욱 깨끗하다. “옛 날 제물이 외형적인 성화와 씻음에 의해서 하나님께 바쳐졌듯이 이 제물들은 성결의 영에 의해서 주님께 성별되며, 이 성결의 영의 능력의 내면적인 작용을 통해서 그들이 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되는 법이다. 영혼의 순결은 말씀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 그래도 인간의 음성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하며 생명이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 청결의 기능이 성령에게 속하는 것이 적합하며 그것이 옳다.”32)
결국 서신의 두 번째 목적을 통해서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 “성결”과 관련하여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즉 서바나 선교의 목적은 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께 드려지게 하기 위함이다.
세 번째 로마서의 집필 목적은 목회적이다. 로마 교회 유대인 크리스찬과 이방인 크리스챤이 함께 공동체 안에 있는 상황 가운데 갈등이 심화된 것이 있었다.33) 그것은 인지 부조화로 이해 할 수 있는데34) 바울은 인지부조화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향해서 복음이라는 주제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강조하고 있다. 즉 복음으로 그들의 인지부조화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바울에 따르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같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갈등을 벗어 던지고 연합하여 더욱 구원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15:5). 이것이 서론과 인사(1:1-7), 그리고 본론의 결론에서 로마 방문을 하려고 하는 목적(앞의 첫째, 둘째 목적 : 1:8-13, 15:14-33)을 제외한 로마서 전체에 흩어져 있는 내용이다(1:18-15:13). 이 본론의 전제는 1:14-17절이다.35) 첫째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모두에게 내가 복음의 빚진 자이다. 따라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원한다(14, 15).36) 둘째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16a). 첫째와 둘째는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를 포함한다(16b). 셋째 따라서 구원 받은 믿음을 가진 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17). 이러한 대 전제 아래 바울은 구체적인 설명을 본론에서 펼치고 있다.
첫째 본론 안에서의 서론은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를 말하고 있는데, 죄 아래 있는 이방인들을 향하여 죄성을 논술하고 있다(1:18-32).37) 뿐만 아니라 일반 유대인을 향하여 역시 그들의 죄성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2:1-3:8).38) 둘째 이러한 죄 가운데 있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은 믿음과 은혜로 크리스챤이 되어야 한다. 지금 현재 크리스챤이라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죄 가운데 있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더 크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죄를 받을 뿐이다. 물론 크리스챤이라고 할지라도 이것을 이겨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데 성령이 도우심으로 그것은 가능한 것이다(3:8,39) 3:9-8:39). 이 주제에 대한 역사적 논증이 9-11장이다. 즉 이 본문은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40)(믿음과 은혜에 대한)을 이루어진 역사로서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믿음을 가진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방식을 권면하는 것이 12:1-15:13절이다.41) 이러한 논리적 진술은 로마서의 기록 목적을 명확히 보여 주는 것으로서 이 목적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은 결국 “죄인 - 믿음으로 구원(성결자) - 성결자의 성결 유지를 위한 권면”으로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논자는 바울이 로마서를 쓴 목적 안에서 그 안에 흐르고 있는 그의 성결 사상을 추적하였다. 이것은 로마서 거의 전부에서(1:8-15:33) 찾아진 사상이다. 이제는 이것의 확인을 위하여 이 본문 안에서 나타난 신학적 주제와 연관하여 12:1-2절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3. 본문 12:1-2절의 주석을 통한 성결과 신학적 주제의 관계성.
12장 1-2절 분석
1 Παρακαλῶ οὖν ὑμᾶς, ἀδελφοί, διά τῶν οίκτιρμῶν τοῦ θεοῦ, παραστῆσαι τά σώματα ὑμῶν θυσίαν ζῶσαν ἁγίαν εὐάρεστον τῷ θεῷ, τήν λογικήν λατρείαν ὑμῶν. 2 καί μή συσχηματίζεσθε τῷ αίῶνι τούτῳ, ᾀλλά μεταμορφοῦσθε τῇ ἀνακαινώσει τοῦ νοός, είς τό δοκιμάζειν ὑμᾶς τί τό θέλεμα τοῦ θεοῦ, τό ἀλαθόν καί εὐάρεστον καί τέλειον.
본문은 “그러므로”(οὖν)라고 시작한다. 이 말은 앞에 설명한 내용의 결론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이것은 8장에 이은 연결로 볼 수도 있고, 또한 11장에 이은 연결로 볼 수도 있다.42) 또한 이 문장은 “권면한다.”(Παρακαλῶ)로 끝나므로 3절 이하로 15:13절까지의 크리스챤의 삶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따라서 본문은 로마서 전체의 앞과 뒤를 연결하는 문장으로 매우 중요한 구절이며, 그 안에서 바울은 성결이라는 신학적으로, 또한 교회의 성도들이 실천해야 할 중요한 핵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핵심을 말하면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개념은 “하나님의 자비”인 신론과 관계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하노니 ~~ 드리라”는 구절의 이해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면하니 그의 자비하심을 따라 그에 합당하게 하라 그것은 거룩한 산제사로 너희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자비하심
바울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말하고 있었다. 죄인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지(9-11장), 그러므로 현재의 로마 교회가 어떻게 그 자비하심을 얻을 것인지에 대하여 매우 길게 설명하였다(1:18-8:39). 하나님의 자비는 τῶν οίκτιρμῶν τοῦ θεοῦ이다. 자비(οίκτιρμῶν)는 죄인에 대하여 베푸는 용서의 은혜이다. 9:5절에서 바울은 이 단어를 로마서에서 처음으로 “불쌍히 여기다”로 번역되어 사용하였다.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그러나 바울은 자비를 이 단어보다는 ἐλεῶ(긍휼)를 더 많이 사용하면서 설명한다. 이 단어의 등장은 주로 9-11장에서 집중되어 나타나는데(9:15(2회), 16, 18, 23, 11:30, 31(2회), 32, 12:8, 15:9) 첫째 이것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것으로, 둘째 이것을 인간은 받는 것으로 사용하였다. 단 12:8절만은 예외로 그것은 은사로서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인간에게 베푸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자비로 나타난다. 개인(야곱의 선택) 뿐 아니라 집단이나 민족(이스라엘 사람의 선택), 더 나아가 이방인에게까지 나타난다. 이 자비는 하나님의 사랑 확증으로 최고의 절정으로 나타나는바 구원의 열매로 바울은 말하고 있다(5:8-9, 3:24-26). 따라서 이 하나님의 자비는 기독론, 구속론, 구원론, 예정, 선택, 섭리의 개념과도 맞물려 있다.43)
그렇다면 바울은 이 본문에서 무엇을 말 하려는 것인가? 하나님의 자비를 말하려는 것인가? 결코 그러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가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은 자들이 그분 앞에 어떻게 나갈 것인가를 말하려는 것이다. 이 구절은 명령형으로 되어 있으며, 다음 구절 역시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성도가 각자의 신체를 하나님께 거룩히 드려야 함을 뜻하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44) 즉 성도의 결정권에 있다는 말이다.
2) 첫 번째 권면
바울의 권면은 성도들에게(너희에게) 하는 것으로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παραστῆσαι τά σώματα ὑμῶν θυσίαν ζῶσαν ἁγίαν εὐάρεστον τῷ θεῷ,)이다. 또한 2절을 포함한다. 2절의 시작은 καί(and)이다. 곧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을 동격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거룩한 산제사와 2절의 내용은 평행을 이룬다. 이 권면은 특히 바울의 인간론과 깊은 관계를 가지는 구절이다.
(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a. 몸 : σώμα - 바울은 로마서에서 인간을 나타내는 여러 표현들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자칫 인간의 구성 요소를 나타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45) 육(σάρξ : flesh),46) 몸(σῶμα : body),47) 마음(καρδία : heart 와 νοός : mind),48) 양심(καρδία : mint),49) 생각(φρόνημα : mind, think),50)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인간의 구성 요소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육은 육체적 살을 의미하며, 인간의 성질을 나타내는데, 곧 연약한 인간성(롬6:19, 8:3), 그리스도의 인간성(8:3), 신자의 옛 성품(7:25), 중생하지 못한 인간성(8:8),51)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는 것(7:23, 8:2)으로 이해된다.52) 이와 함께 쓰이는 단어는 몸인데 이것은 때로는 육을 나타내기도(6:6, 7:24, 8:10) 하지만 언제나 육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53)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몸은 육과 마음, 양심, 생각, 영을 다 포함하는 전인적 개념으로서의 인간을 나타낸다. 특히 이 구절에서 사용된 몸(σώματα)은 복수로 사용되었다. 복수로 사용된 곳은 1:24절과 8:11절이다. 1:24절은 “저희(성도가 아닌 이방인들)”와 관계된 몸들이며, 12:1절과 8:11절은 “너희(성도들)”와 관계된 몸들이다. 따라서 이는 집단이나 공동체를 포함하는데 사용하였다. 저희의 몸은 불 명예로운 이전의 몸이며, 너희의 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몸으로 살 수 있도록 변화되었음을 암시한다.54)
b.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 εύάρεστον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다(히 11:6).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8:8).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는 육신에 있지 아니하여야 하며, 믿음을 가져야 한다. 곧 성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과 같이(5:6-11, 15:3)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15:1).
c. 거룩한 산 제사 : ζῶσαν ἁγίαν εὐάρεστον - 6:11, 1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예수께서 화목 제물로 드리심 같이 우리 자신을(몸)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신체적 육이 아니라 중생하기 전의 인간성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산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는 것이며, 그 속에는 성령이 거하신다(8:11). 그리고 장차 그 몸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 구속받아 영광을 입게 될 것이다(8:23).55)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산자이다(6:11). 따라서 산자인 성도가 드리는 제사는 거룩한 것이고(본문), 그 제사는 거룩함을 위한 것이며(6:19), 그것은 곧 영적 예배이다.
3) 두 번째 권면
이 권면은 두 번째 라고 하기 보다는 첫 번째 권면과 동일한 권면의 영속이다. 즉 거룩한 산 제사의 모범을 제시한 것이다. 이해의 편의상 두 번째 권면이라 부른다. 이것은 성결의 유지로 이해되는 것으로서 “거룩한 산제사”와 동일 성질의 것이다.
2 καί μή συσχηματίζεσθε τῷ αίῶνι τούτῳ, ᾀλλά μεταμορφοῦσθε τῇ ἀνακαινώσει τοῦ νοός, είς τό δοκιμάζειν ὑμᾶς τί τό θέλεμα τοῦ θεοῦ, τό ἀλαθόν καί εὐάρεστον καί τέλειον.
καί(and)로 시작하는 이 구절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는 것으로서 A와 B를 동일 성질의 것, 동시성으로 말하는 것이고, 둘째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그 다음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는 A와 B의 전후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전자는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의미이고, 후자는 거룩함 이후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1절과 2절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어지는데, 이미 1절에서 권면하는 대상이 “너희”로서 거룩한 사람을 지칭했고, 그가 거룩한 산제사를 드리는 것으로서 거룩한 자가 하나님께 대하여 취할 일임을 밝혔다. 2절은 분명 거룩한 자의 행할 일에 대한 내용이다. 그것은 “변화를 받다”는 단어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 단어는 본문에 μεταμορφοῦσθε(원형 : μεταμορφόω)로 바울이 사용하였는데 마17:2, 막 9:2에서 “변모하다”로, 고후 3:18절에서 신자들이 ‘영이신 주’의 사역에 의해 한 단계의 영광에서 다른 한 단계의 영광으로 그리스도의형상을 닮아 변화 될 것을 말했다.56) 따라서 이것은 거룩의 내용을 가리키고 있다고 보여 진다.
만일 후자의 경우라면 거룩한 사람이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거룩한 자의 취할 태도)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거룩의 삶을 살라는 것으로서(거룩한 자의 취할 또 다른 태도) 중복된 권면이 된다. 헨드릭슨은 이렇게 보고 있는데 논자는 이에 동의 할 수 없다.57)
a.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 거룩은 이 세대(αίῶνι)를 본받지 않는 것이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이다. 성별된 자가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는 이 세상을 본받지 않는 것이다.
b.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역시 거룩한 산 제사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다. 성별된 자라도 얼마든지 과거로 돌아 갈 수 있다. 보웬은 영으로 신자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변화하는 가를 기술한 것이라고 한다.58) “변화를 받다”는 동사는 현재형 수동태이다. 따라서 “(계속해서) 변화를 받아”라는 것으로서 이 변화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것이어야 한다.59) 이 변화는 근본적으로 성령의 일이다. 그것은 점진적인 성화에 도달된다. 뿐만 아니라 이 동사는 명령형으로 되어 있으므로 신자는 완전한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신자의 책임이 있음을 시사한다.60)
c.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
이는 성결의 유지로써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다. 곧 이것이 거룩한 산제사이다. 하나님의 뜻은 선한 것이고, 기뻐하시는 것이며, 온전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과 성도들의 새로운 생활 즉 새롭게 된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안다.61)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 4:3)이라고 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다. 이것을 분별할 줄 아는 성도가 되라는 것이다.
4. 로마서의 구조(바울의 성결 사상을 중심을)
랄프 P. 마틴은 로마서의 핵심 주제를 “하나님이 구원을 제시하시고 또한 이루어 가는 것으로 구약에서 예언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이르며 이제는 모든 민족을 포괄하며, 또한 믿음을 근거로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로 확장되며 또한 순종과 사랑의 삶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으로 보고 그것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과, 기독교 신자의 생활, 이스라엘의 운명,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명명하면서 이 모든 것이 우주적 또는 사회적 틀 속에 설정되어 있다고 하였다.62)
그러나 지금까지 본 연구의 진행과정 속에서 살펴보았듯이 로마서는 바울의 성결 사상을 중심으로 재구성 될 수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물론 현재까지는 로마서의 본문에 중점 되어졌다. 이제 연구자는 서론과 결론에서 나타난 성결을 살펴보고자 한다. 서론은 로마 교회를 향한 인사이다. 인사와 함께 역시 서론의 핵심은 복음으로 나타나며 이 복음의 주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면서 그분의 인성과 신성이 함께 소개되고 있다. 인성으로 하면 “다윗의 자손”으로 나타나며, 신성으로는 “성결의 영”으로 나타난다. 성결의 영은 성령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는 이미 앞에서 지적한바 있다. 따라서 이 서론의 본문 안에서도 역시 바울의 성결 사상을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결론 역시 성결 사상을 배제하지 않는다. 성도들 간에 문안을 나누면서도 “거룩한 입맞춤”을 말하고 있다(16:16). 이는 단순한 키스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입맞춤”으로 나타낸다. 이는 성도 간의 교제를 말하는 것이며, 역시 바울이 로마 교회에 진심으로 바라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입맞춤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63) 뿐만 아니라 16:26-27절에서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말의 뜻은 “하나님은 우리를 복음으로 말미암아 견고케 하실 분이시다.”의 의미이지만 원문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 “견고케 하다”는 στηρίξαι(원형 : στηρίζω)이다.64) 본문은 "Τῴ δέ δυναμένῳ ὑμᾶς στηρίξαι κατά τό εύαγγέλιόν μου"이다. 좀더 정확한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He is able to make you stand firm in your faith,"(GNB), "who is able to establish you by my gospel"(NIV), "who is able to give you the strength65) to live according to the Good News"(JB), ”who is able to strengthen you according to my gospel"(RSV), "that is power to stablish ~~"(KJV)로 각각 번역했다. 이 번역들에서 공통적인 것은 하나님은 “너희(성도들)를 견고히 서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말미암아서 말이다. 따라서 이 복음은 믿음으로 견고히 서는 것과 믿음의 사람이 견고히 살도록 하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이제 로마서 전체의 구조 윤곽은 여실히 드러난다. 그 구조는 아래와 같다.
구조
1. 서론(인사 및 복음의 주체) (1:1-7)
2. 바울의 1차 로마 방문 목적 및 서신의 목적(1:8-17)
3. 서신의 목적에 따른 내용 전개(1:18-15:13)
1) 이방인 성도를 향한 성결의 길
2) 유대인 성도를 향한 성결의 길
3) 바울 자신의 성결을 향한 몸부림(7:7-8:39)
4) 역사적 논증을 통한 성결의 길(9:1-11:36)
5) 성결자의 성결 유지를 위한 교훈(12:1-15:13)
4. 바울의 2차 로마 방문 목적(15:14-33)
5. 결론(인사 및 복음의 효력 - 견고케함) (16:1-27)
5. 결론
지금까지 본 연구는 “성결”이라는 주제로 로마서에서 나타난 바울의 사상을 논하였다.
성도는 믿는 자요, 의인이다. 그러므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1:17). 그러나 성도가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은 더욱 큰 성결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말이다. 곧 하나님의 특질을 함께 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해 그러한 삶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였지만(1:8), 그 복음은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복음과 대치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1:15).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구별된 성결) 성령의 은사를 통한 열매 맺는 삶(성결의 유지)”이다.
이것을 바울은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고(1:15),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1:16)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복음과 믿음, 구원,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핵심을 이루고 있는데 성결이라는 의미를 통해서 연결하여 보면, 구원이라는 세상으로부터의 분리, 그것은 인간의 행위적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 따라서 세상으로부터의 분리된 하나님의 사람(믿음을 가진자, 구원자)은 하나님의 능력에 따라 거룩하게 구별된 존재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1장 7절에서 말하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로마서 전체의 구조상으로 볼 때 서신의 내용은 성도(성결자)를 향한 가르침이고, 성도(성결자)가 나갈 길에 대한 제시가 함축되어 있다. 그 길은 성도(성결자)의 성결 유지를 위함임을 알 수 있다. 다니엘 스틸의 다음과 같은 말에 동의하면서 칭의(구별)와 성결에 대한 바울의 사상을 결론지으려 한다. “12:1절의 네 몸을 드리는 행위는 결코 반복 할 수 없는 단 1회적 행동이다. 뿐만 아니라 성화와 칭의는 한 가지로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역사이다.”66) 체스터 레만은 바울의 성결 사상에 대하여 데살로니가서를 중심으로 전개했는데 “성결에는 특정한 시점에서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측면과 아울러 지속적인 측면이 고루 포함되어 있음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67) 12:1절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1회적이며, 2절의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것은 계속, 혹은 반복적이다.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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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usalem Bible, King James Version
Revised Standard Version, The Greek New Testament(U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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