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여성학/여성-신약여성

겐그레아의 뵈뵈

불로꿀목 2008. 4. 2. 23:42
 

겐그레아의 뵈뵈 (롬 16:1-2)

   바울은 교회의 여성 지도자 중 한 사람인 겐그레아 교회의 뵈뵈를 상당히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녀에 대한 정보는 오직 로마서 16장의 첫 두 구절에 국한되어 나타나지만 이 짧은 글에서 그러한 느낌을 여지없이 받는다.1)  바울은 뵈뵈와 상당히 가까운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로마 교회에 뵈뵈를 천거하고 있는 바울은 단순한 천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로마 교회가 힘써서 그녀의 필요한 것들을 채워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녀에 대해서 교회는 합당한 예절을 동원하여 영접할 것을 권한다.  뵈뵈와 바울의 관계가 얼마나 절실한 관계 속에 있는가에 대한 또 다른 증거는 그녀가 바울의 로마로 보내는 편지를 전달하는 자의 위치에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뵈뵈는 바울에게 있어서 “후원자”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이렇듯이 바울과 뵈뵈가 가까운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인은 그녀가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일에 기꺼이 참여하였으며, 적극적인 활동을 보이며, 바울의 사역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뵈뵈는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한 여인이었다.  더 나아가 교회 안에서 힘써 맡겨진 일에 충성한 일꾼이었다.  그녀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하여 바울의 사역을 위해 때로는 보호자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그녀를 단순한 한 여인으로서의 봉사자로 머무르게 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적극적인 교회의 성직을 맡은 자로 여길 것인지에 대하여는 논란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뵈뵈를 좀 더 적극적으로 분석함으로 그녀가 초대교회에서 어떠한 영향력을 가진 여인이었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관심은 바울의 사역에서 빠질 수 없는 여인으로서, 그리고 성경의 여인들의 한 표상으로서 나타나는 뵈뵈가 오늘날 교회에서의 여성들에 대한 시각을 좀 더 분명하게 밝히는 좋은 연구의 모델이 될 것이다.


   1) 교회 성직자로서의 뵈뵈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이다.  겐그레아 교회는 바울의 고린도 사역에 의해서 탄생된 딸과 같은 교회이다.  겐그레아는 고린도만과 사로닉만을 사이에 두고 그 입구에 위치한 지역이다.  지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겐그레아는 그리 유명한 지역은 아니다. 

   최영실은 그녀를 목사직에 있었다고 말한다.(최영실, 214)  그녀의 주장에 동의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의 중요 직분자였다는 사실이다.  뵈뵈의 자세한 기록 역시 매우 간단하다.  그러나 비록 두 구절의 뵈뵈에 대한 기록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뵈뵈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뵈뵈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그녀가 지닌 교회에서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그 역할에 대한 용어들이 몇 가지로 나타난다. 

   먼저는 디아코논(1절)이라는 단어로서 ‘일군’이다.  디아코논의 원형은 디아코노스인데, 개역 성경은 이 단어를 ‘일군’으로 번역하였지만, 킹 제임스 성경은 ‘종’으로 번역하였고, 장신대 교수인 문희석은 영역으로서 ‘minister'로 번역하였다.  신약에서 디아코니아가 집사로서 언급되었는데 그렇다면 그것 역시 봉사자의 의미를 가진다.  신약의 모든 디아코니아는 집사의 뜻으로 해석했다.  유독 한 곳 로마서의 본문만이 ’일군‘ 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의 번역은 바뀌어야 한다. 

   두 번째는 프로스타티스(2절)로서 ‘보호자’이다.  바울은 뵈뵈를 프로스타티스라고 부른다.  그 의미는 ‘지도자’와 ‘행정가’라는 뜻을 포함한다.  우리 개역 성경에는 보호자로 나타난다.  이것은 뒤에서 다룰 것이다.

   세 번째는 아델펜(1절)으로서 ‘자매’라는 단어이다.  바울은 자매라는 명칭을 선교자 칭호로 사용한다.  즉 자매는 가정교회의 여성 지도자들을 위한 존칭이었다.  초대교회는 거의 모두가 가정 교회였음을 상기해야만 한다. 

   이러한 뵈뵈에 대한 세 개의 명사적 호칭들은 지금까지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여 집사’, 혹은 ‘일군’, ‘후원자 또는 보호자’로의 해석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여 최근의 여성 신학자들은 이 단어들이 쓰인 용례들을 설명하면서 결코 그렇게 해석 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이 단어들에 대한 정당성은 여성 신학자들의 주장과 일치한다.  바울이 뵈뵈에 대하여 이렇게 세 가지 호칭을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분명 뵈뵈는 교회의 단순한 봉사자를 의미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2) 바울 서신의 전달자로서의 뵈뵈

   바울은 고린도전서 16:3절에서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라고 하였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디모데를 편지 전달자로 삼았다(고전 16:10).  에베소서는 바울이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에게 편지를 전달하도록 했다.  그는 에베소 교회의 마음을 위로할 만한 사람이었다(엡 6:21-22).  편지는 아무에게나 보내지 않는다.  특히 교회 공적인 사실들을 기록한 것을 아무에게나 보낸다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확실히 편지를 쓴 사람이 신뢰할 만한 사람을 택하여 보내는 것이다.

   뵈뵈는 바울의 신뢰자였다.  로마서라고 하는 대단한 편지를 맡은 자였다.  로마서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로마 교회를 방문하고, 그들을 통해 서바나(스페인)로 가기 위한 청탁을 담고 있는 사실을 감안 할 때, 그리고 그 서신이 교리적으로 일관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 할 때 너무나 중요한 서신이다.  따라서 이렇듯 중요한 서신의 전달자라는 사실만으로도 뵈뵈는 바울의 신뢰 그 자체였음을 부인 할 수 없다.


   3) 바울의 천거를 받은 뵈뵈

   통상적으로 추천서는 낮은 계층에 속하는 사람을 대신해서 그 동료에 비해 조금 높은 계층에 속하는 그리고 최소한 동일한 사회적 신분에 속하는 사람이 그 아래의 사람을 위해 써 준다.  그러나 뵈뵈는 추천을 받기는 하지만 추천서는 없다.  단지 로마서의 우리가 보는 본문 구절에서만이 추천서와 같은 글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16장의 긴 문안 인사와 상당한 수의 문안 대상자들 모두에게 뵈뵈는 추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에른스트 케제만은 그의 로마서 주석에서 “뵈뵈는 이런 식으로 곧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추천 된다”고 밝히고 있다.2)

   뵈뵈가 바울의 편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그 편지를 읽으면서 애매한 부분은 설명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바울은 그녀가 진실로 자신의 편지를 설명하기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그들 교회가 이해해 주길 기대한다.  바울은 이점을 그녀가 교회에서 맡고 있는 직분을 인용하여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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