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여성학/여성-신약여성

막달라 마리아

불로꿀목 2006. 7. 6. 05:59
  막달라 마리아(요 21:11-18, 눅 7:38)

  현대 기독교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있어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단연 막달라 마리아이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예수를 따르며, 섬겼던 여인이었고, 뿐만 아니라 예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한 여인이었으며, 최초로 예수의 부활을 전파한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 막달라 마리아는 참 제자였다는 사실과 사도에 속하는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이 글은 과연 막달라 마리아가 그러한 여인이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며, 만일 그렇다면 왜 그녀가 사도에서 제외되어야만 했는지를 살피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를 위하여 본문을 중심으로 그녀에 대한 예수 부활의 기사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부활의 표적을 다룬 이 기사에서 왜 마리아가 중요한 한 인물로 묘사되는가를 살피려 한다.

   1. 요한복음 20장의 구성

   요한복음 20장은 예수의 부활에 관한 기사이다.  19장에서 십자가의 수난을 통해 무덤에 장사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20장에서 부활을 기록한다.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요한은 부활 후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으로 끝맺는다.  단지 21장에서 베드로에게 목양의 사명을 맡긴 것이 특이하다. 

   20장은 5개의 대지로 구분이 되는데 1-10절로 빈 무덤을 확인하는 제자들(베드로와 애제자)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예수의 부활을 인식하지 못하고 불신의 상태에서 조용히 돌아간다(9-10).  두 번째 대지는 11-18절로서 아무 말 없이 돌아간 두 제자 뒤에 남아 있던 마리아가 부활의 예수를 만나는 장면이다.  예수를 만나고 예수께로부터 사명을 받고, 그것을 증거 한다(가서 이르되 ~~ 이르니라 : 17-18).  세 번째는 19-23절로서 제자들에게 첫 번째 보이신 부활의 현현이다.  이때는 도마가 함께 하지 않았다.  부활한 예수를 만난 제자들은 기뻐하였다(20절).  네 번째는 24-29절로서 두 번째 제자들에게 보이신다.  도마도 함께 있었고, 도마는 부활의 예수를 만나고는 위대한 신앙을 고백한다.  마지막은 30-31절로 요한의 복음이 기록된 목적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얻게 하려는 목적을 진술한다.  따라서 본문은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불신과,1) 이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를 믿고 위대한 신앙을 고백하게 되는 그 사이에서 여자의 역할에 대해 기록한 것이다.  즉 불신과 신앙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다.  이 가교 역할의 본문에서 여인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본문의 핵심이다.


   2. 본문의 구조 및 주석

   이 본문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물론 요한의 복음 전체가 그렇듯이 말이다. 

   마: (예수의 시체가 없어졌음으로, 그리고 두 제자인 베드로와 애제자가 무덤을 들여다 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홀로 서서 울면서 무덤을 들여다본다.  그때에 그녀의 두 눈에 두 천사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천: 여자여! 왜 우느냐?

   마: 사람이 내 주를 가져갔나이다.  어디다 예수의 시신을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하여 울고 있나이다. (말하면서 뒤를 돌아본다.  거기에 예수가 서 계시지만 그녀는 그가 예수신줄 알지 못한다.)

   예: 여자여!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 (말하는 자가 동산지기인 줄로 착각하면서) 주여 당신이 옮겨 갔다면 어디두었는지 나에게 아려 주소서!  그러면 내가 가져가겠나이다. (대답과 동시에 얼굴을 다시 원위치 한다.)

   예: 마리아야!

   마: (다시 고개를 돌리면서) 랍오니여!(예수를 만지려고 다가선다.)

   예: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하였다.  너는 네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전하여라.

   해설: 예수의 말씀 후 곧 마리아는 일어나 가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주를 보았다고 말하면서, 주님이 말씀하신 명령을 전하였다.  - the End. -


   이 본문 11-18절은 세 상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첫째는 천사들과의 대화(11-13), 둘째는 예수님과의 대화(14-17), 셋째는 제자들에게의 증거(18)이다.  예수님과의 대화는 다시 예수를 깨닫지 못하는 마리아(14-15), 예수를 만난 마리아(16), 예수의 명령(17)으로 나누어진다.  제자들에게의 증거 또한 분해 할 수 있는데 갔다는 것과(17a), 보았다는 증언과(17b), 예수의 명령을 전달하는 사명 감당이다(17c). 

   예수를 만나는 장면에서 예수께서 마리아를 부르신다(16절).  예수의 부름 전까지 마리아는 지금 대화하는 상대가 예수신지 모르고 있다.  그녀는 단지 동산지기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야”하고 예수께서 부르실 때, 그때서야 마리아는 자기를 부르고 있는 상대, 곧 지금 대화하고 있는 상대가 예수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랍오니여!” 하고 응답한다.  많은 학자들은 이것을 요한복음 10장 1-3절의 “목자와 양”과 연관시켜 해석한다.2)  그러나 논자는 이러한 해석이 합당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예수께서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알지 못하다가 이름을 부를 때에야 예수이신 것을 알았다는 것을 목자와 양에 비유하여 “목소리를 안다”고 하는 것은 어딘가 해석에 있어 어색한 감을 준다.  그렇다면 왜 대화를 나누는 중에는 그 목소리를 알지 못했을까?  이것에 대한 이해가 먼저 되어야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름을 부르기 전에 이미 대화를 나누고 있었음으로 그 목소리를 알고 예수이신 것을 알았어야만 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그들의 영안이 열리지 않음으로 그들은 예수를 알지 못하였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한참 대화 중엔 결코 인식하지 못했던 상대가 예수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다.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눈이 가리워져서 알지 못하다가 눈이 밝으매 예수신줄 알았다(눅 24:16, 31).  따라서 마리아의 눈이 가려졌기 때문에 알지 못하다가 예수의 부르심에 눈이 떠진 것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김응조는 “마리아를 부르는 주의 음성에 마리아의 영적 귀가 열렸고, 그녀의 눈이 열려서 주를 알아보았다.”고 이 구절을 해석했는데 정당한 해석이라고 보여진다.3)

   “가서 이르되”(17절)에서 “말하다”로 쓰인 εἰπὲ(원형 εἶπον)는 λέγω(say, tell, speak)의 aorist(부정과거완료명령형)이다.4)  그리스 문법에서 에어리스트는 “단번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에어리스트 직설법을 제외하고 에어리스트는 ‘무 시간적’이며, ‘동작의 단일성’을 표시한다.  현재형이든 완료형이든 이것은 계속적인 혹은 반복적인 형태를 나타낸다.  즉 완료 후 현재에까지 계속하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5)  그러므로 “(단번에) 말하라”는 뜻이며 그것은 계속해서 말해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로부터 마리아가 위임 받은 것이다.  존 라일(Ryle)은 “여자가 첫 사람으로서 부활의 소식을 선포하라는 위임을 받았다”는 시릴의 글을 인용하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드러내 주신 최초의 제자에게 제시하신 첫 번째 임무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것”이었다고 말한다.6)

   가다 πορεύου(원형πορεύομαι)는 ‘떠나가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예수 자신으로부터 떠나가서 말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의 명령을 따라 마리아는 즉시 예수를 떠났고 제자들에게 가서(원문에는 왔다로 되어 있음) 예수를 보았다는 사실과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말했다(원문에는 알렸다). 


   3. 예수 부활 현현의 최초 목격자 마리아.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보이는 마가의 기록(16:9)이나 요한의 기록에 의하면 마리아는 예수 부활의 최초 목격자로 나타난다.  성경에 부활 목격자 목록이 네 곳에 나타난다.  가장 먼저 목격자를 기록 보고한 문서는 바울의 것으로서 고린도전서 15장 5절 이하에 나타난다.  고린도전서의 기록은 4개의 복음서보다 빠르게는 15-20여년, 늦게는 40여년 차이가 있다.7)  부활 목격자에 대한 바울의 보고는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그 후에 야고보에게와 모든 사도에게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내게”라고 함으로 자신이 가장 마지막에 부활을 목격한 것이라고 하였다(고전 15:5-8).  바울에 의하면 분명 부활의 목격자는 남자들만으로 국한된다. 

   그러나 비록 바울의 글보다 뒤에 기록되긴 했으나 복음서들은 그렇게 보고하지 않는다.  마태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그 후에 열 한 제자”(마 28:1, 9, 16-17)로 보고하고 있으며, 마가 역시 마태와는 다르지만, 그리고 후대 첨가된 부분으로 인정하지만 “마리아와 시골로 가는 두 제자와 그 후에 열 한 제자”(막 16:9, 12, 14)로 보고하며, 누가는 “시몬에게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그리고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하던 자들에게”(눅 24:34, 31, 36)로 보고한다.  마지막으로 요한은 “마리아와 제자들과 후에 도마를 포함한 제자들 그리고 디베랴 바닷가에서 제자들에게”(요 20:16, 19, 26, 21:1)로 보고함으로 복음서 기자들 가운데 세 명은 분명 남자들만 보고한 바울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누가 역시 빈 무덤을 본 여자들에 대해서 말하고 그녀들이 천사의 말을 들은 것을 밝히지만 목격자로서는 말하지 않는다.  아마 이러한 사실은 누가가 바울의 동역자로서 바울의 영향을 받은 것 때문이라고 생각된다.8)  세 복음서 기자들의 공통점은 분명 먼저 여자(또는 들)가(이) 부활을 목격했고, 그 이후에 남자들이 목격한 것이다.  목격자 진술에서 마태는 두 마리아를 말하지만 마가와 요한은 한명의 마리아만을 기술하고 있다.  어찌되었든 중요한 것은 마리아는 예수 부활의 첫 목격자라는 사실을 마태와 마가 그리고 요한은 말하고 있다.


   4. 마리아의 제자 및 사도성.

   바울의 증언에 의하면 마리아는 분명하게 그리고 확실한 사도였음을 의심할 수 없다.  바울에게 있어서 사도의 요건은 부활하신 예수를 목도하고,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소명을 받은 것이다(고전 9:1-2, 15:8-11, 갈 1:11-16).  마리아는 이 요건에 꼭 맞는 인물로서 다른 전승에서 베드로에게 부여된 부활의 첫 증인으로서의 영광이(고전 15:5, 눅 24:34) 요한복음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있는 것으로 증거되며, 뿐만 아니라 “내가 주를 보았다”는 사도적인 부활의 증거가 요한에게 있어서 마리아를 통해서 전달되어진다는 것이다.9) 

  그러나 마리아는 사도의 명단에 없다.  마리아가 왜 사도의 명단에 등재되지 못했을까?  마리아가 사도에서 제외된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정확히 하기는 불가능하다.  분명한 답에 대해서 논자는 모른다. 

   기독교 훼미니스트들은 시대적인 상황 가운데 가부장적 영향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요한은 마리아를 사도로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사건의 매우 중요한 인물로 그녀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라이 사사구의 대답은 이것에 대한 하나의 해답일지 모른다.  물론 이것은 그의 추측이다.

   “남성만을 명단으로 하는 전승과 그리고 여성에게 제일 처음으로 나타났다는 전승이 따로따로 존재했었다.  어쩌면 여성을 명단에 넣은 현현 전승이 남성만의 명단인 전승에 대하여 말하자면 여성의 지위를 부활시키고자 했다는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  오랜 전승에 편승해서 볼 때 예수는 남성에게만 현현했으므로 교회의 지도자는 남성만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주장한데 반하여 그렇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전승 속에 여성을 복권 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10)

   그것은 가능한 말인데 후대에 추가된 마가의 기록에서, 그리고 요한의 기록에서 두드러지게 이름을 밝힌데서 그 가망성은 충분하다고 보여진다.

   5. 요한의 입장 : 요한은 왜 마리아를 첫 부활의 목격자로 지위를 상승시켰는가?

   부활 현현에 대한 목격자 진술에 대한 가장 최초의 글은 사도 바울에 의해 나타난다.  부활하신 예수를 마리아가 만났다는 사실에 대한 기록은 누가복음을 제외한 세 복음서에 나란히 등장한다.  마가복음(16:1-8, 9-11)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를 만났으나 무서워서 입을 열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흔히들 후대에 첨가되었다고 말하는 9절 이하에서 마리아가 예수를 목격했다고 첨언했다.   마태복음(28:1-10)에서는 마리아가 목격한 사건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천사의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달려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는 알리기 위해 달려갔다고만 기록하고 부활의 메시지를 끝맺는다.  그리고 누가복음(24:22-24) 에서는 마리아가 부활의 예수를 만났다고는 기록하지 않는다.  다만 천사의 말을 듣고 시신이 없음을 보고한 것으로만 묘사하였다.  마가는 목격자로서만, 후대에 첨가한 글에서 목격과 증언을 말하고 있으며, 마태는 목격자로서만, 누가는 천사의 말을 듣고 증언하였다고만 기록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복음서 기자들과는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요한복음(20:1-18)에서는 목격과 증언을 함께 다루고 있는 것이다.  즉 최초로 복음서 기자로서는 마리아가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고 증언했다는 기록인 것이다.  또한 마가와 마태와 누가는 여인들과 함께라고 기록하고 있는 반면, 후대 첨부인 마가의 기록을 빼면 유일하게 요한만은 마리아라는 한명에게만 보이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마리아의 위상을 격상 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이것은 요한의 공동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요한은 마리아(정신병의 경력자) 등과 같은 여인과 예수의 관계는 요한 공동체의 관심사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나타냄으로 당시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요한의 공동체를 나타내는 것일 것으로 추측 된다.  “교회 안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이해하는 엄격한 전통주의를 깨뜨리며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그들이 받아들인 복음을 증거 하도록 부름을 받았고 그러므로 이 본문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어진 예수의 명령에 대한 분명한 함축적 의미이다.”는11) 쾌스텐버거의 말은 요한의 시대에 최소한 그의 공동체와 일반 기독교 공동체와의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추측케 한다.


   5. 결론

   본문은 예수의 부활 현현의 기사이다.  예수 부활의 기사는 요한복음에서 총 네 번이 나타난다.12)  물론 부활을 예고하는 기사가 있지만(20:1-10) 여기서는 마리아나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에 대한 기대도 갖지 않은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역시 예수께서 직접적으로 무덤을 찾은 자들에게 나타나시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첫 번째로 부활의 모습을 드러내신 것은 막달라 마리아 에게였다.  그리고 네 번째 나타내심 이후에 요한은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 타나나신 것이라”(21:14)고 기록하고 있다.  요한의 기록에 의하면 분명 첫 번째 모습을 드러내셨던 마리아에게의 보이심은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제자들에게 보이신 첫 번째는 안식 후 첫날로써 도마가 제외된 제자들 에게였다(20:19).  두 번째는 도마가 포함된 제자들 에게였으며(20:26), 세 번째는 갈릴리 에서였다(21:1).  분명 바울의 남성 위주의 명단과는 다르다. 

   본 연구에서 선택한 본문은 예수의 부활 사건에 대한 목격자 진술을 통하여 기독론을 더욱 심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본문은 불신과 신앙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혔고, 주석을 통해 마리아가 최초의 부활 목격자요 증언자라는 것임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사도 명단에 등재되지 못했다.  분명한 사도적 권위를 가질만한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이 그리고 마가가 마리아를 부각 시킨 데는 남성 전승과 여성 전승이 존재하다가 여성의 목격을 진실로 여긴 저자가 잊지 않고 부가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요한이 마리아를 등장 시킨 데는 요한 공동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끝으로 이 글에서 세심히 다루지 못한 요한의 마리아 등장 배경과 사도권 박탈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리라 판단된다.  실상 이 글의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루지 못했다.  이것은 기독교 훼미니스트들의 몫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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