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여성학/여성-신약여성

빌립의 네 딸들

불로꿀목 2006. 7. 5. 04:51
 

  빌립의 네 딸들(행 21:9)

   신약의 일반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의 활동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특히 공중 앞에서 가르친다거나, 또는 낮선 남자들과의 대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상하게 생각 할 정도로 여성들은 조심해야만 했다.   물론 남자들도 여자들과 대화한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게서는 당당하게 여자들과 대화를 하셨으며(그것도 사마리아 여인과), 여자들의 문제들도 해결해 주셨다.  여자들의 활동이 제한된 사회에서 예수께서는 그들의 활동을 막지 않으셨다.  눈물로 발을 닦아 주고 향유를 뿌려 주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던 여인에 대하여는 복음이 전파되는 어느 곳에서든지 그 여자의 행동을 전파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예수께서 살아 계신 동안 여자들의 활동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단지 예수를 추종하고 수종하는 정도였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난 이후 교회가 시작되면서 여자들의 활동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소개하고 있는 여성들도 여러 명이고, 바울은 그의 서신들에서 상당히 많은 여성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교회가 보장하는 활동이었으며, 또한 훌륭하게 자신들의 사역을 감당하였다.   헨리 체드윅(Henry Chadwick)은 그의 초대교회사에서 “기독교의 전파는 여자들 사이에서 성공적으로 전파되었다.  기독교가 상류 사회에 진출하게된 것은 대부분이 아내를 통해서였다”고 진술하였다.1)

   그 가운데 우리가 주목할 여성은 전도자 집사 빌립의 네 딸들이다.  이 여성들에 대한 기록은 오직 주가만이 취급하고 있으며, 한 구절로 소개가 끝나버리는 아쉬움이 있다.  그녀들의 출생과 활동, 그 이후의 기록들이 없기 때문에 이들을 연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에 대한 2차적인 자료들이 약간 구비되어 있으므로 이들이 교회에서 어떤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는지를 살피는 것도 꽤나 흥미진진한 일일 것이다.

   먼저 바울의 고린도 교회에게, 그리고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들과 같은 맥락에서 교회에서의 여성들이 잠잠해야 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이요, 교훈이었다면 가이샤라에 있는 빌립의 집에 들어가는 바울은 그 딸들의 활동에 제약을 가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을 것이다.  한두 살 먹은 어린 아이들도 아니요, 인생을 살만큼 산 여인들도 아니요, 아직 말만한 처녀들인 그녀들이 예언을 하고 있다.  그녀들이 집 안에서만 예언을 하는 자들이었다고 우리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버지 빌립의 신앙과 그의 열정적인 전도열이 결코 자신의 딸 들이 받은 예언의 은사를 묵히고 있도록 방치하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바울과 같은 뜻을 가진 빌립이라고 한다면 결코 그들을 향해서 누가가 굳이 “예언하는 자들”이라고 표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빌립은 첫 교회의 집사로서 촉망을 받고 있던 사람이었고,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가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모범된 신앙인이었다(행6:).  니골라 역시 그러한 자였지만 영적 교만으로 인하여 그는 이단이 되었다.  그러나 빌립에 대해서는 결코 잘못된 기록이 없다.  때때로 사람들은(역사가들과 초대교회 교부들조차도) 사도 빌립과 전도자 빌립을 혼동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다루는 내용에 있어서는 전도자 빌립 집사를 향한 것으로 귀결된다.  그들의 기록들에 의하면 빌립은 히에라폴리스에 잠들었고, 늙을 때까지 처녀로서 지낸 그의 두 딸 역시 그곳에 매장되어 있다.  성령 안에서 생활하였던 한 딸은 에베소에 매장되었다.2)  역시 논쟁가인 카이우스(Caius)도 “아시아의 히에라폴리스에서 빌립의 네 딸이 여 선지자로 활동했다.  이들의 무덤과 부친 빌립의 무덤이 그곳에 남아 있다”고 하였다.  빌립이 죽을 때까지 자신들의 전도 사역에서 자신의 네 딸들을 동역자로 삼았음이 분명하다.  이 딸들은 예언하는 은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칼빈(Calvin)도 이 딸들이 예언의 은사를 받았음을 동조한다.  그러나 그는 은사 폐지론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당시 초대교회의 복음 전파를 위한 일시적인 은사로 구분하여 현재 시대에서는 예언과 같은 특수 은사는 사라졌다고 말하는 오류를 범한다.  특히 여성들이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주석에서 사사로운 곳에서 그리고 공적인 모임 밖에서 또는 집에서만 예언하였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교회의 공적 부분에서 여인들의 활동 역할을 담당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하였다.3)  이는 은사의 특성을 무시한 말인데 은사는 사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 있고, 나타내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라 보여진다.  예언은 앞 일에 대하여 또는 말씀에 대한 것인데 집에서만 나타낼 특성의 은사가 아니다.  누가는 처녀라는 말을 강조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A. C. Hervey는 “이것은 확실히 그들이 그들의 생활을 하나님 섬기는 일에 바치었다는 인상을 제시한다”고 하였다.4)  웨슬리 성경 주석 편집자 중 한 사람인 C. W. Carter는 이 딸들에 대하여 두 가지 결론을 제시하였는데 첫째, 신앙심이 깊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빌립의 딸들은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면서 주님을 섬기기로 했다.  둘째는 이 당시에 이미 여자들이 교회의 사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독신 생활과 결혼에 관한 바울의 조언(고전 7장)을 이 여자들이 듣고 따랐는지도 모른다고 하였다.5)

   우리는 여기서 유세비우스의 기록대로 믿는다면 빌립의 네 딸 가운데 최소한 두 명은 독신의 은사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역시 웨슬리 성경 주석 편집자 중 한 사람인 아담 클라크는 “아마도 이 여자들은 교회의 교사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언이라는 단어가 이런 의미로 자주 사용되기 때문이다.  요엘이 예언이라는 말을 이런 의미로 사용했을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빌립의 딸들이 여선지자라고 한다면 왜 교사일 수 없겠는가?”라고 하였다.6)

   우리는 여기서 이제 전통적인 해석과 다시 연결하여 대치시켜 보아야 한다.  바울이 가이샤라의 빌립 집에 방문한 것은 그의 제 3차 전도여행 막바지였다.  즉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 이곳에서 바울은 약 2년여 동안을 머물며 보내었다.  아버지 빌립과 전도자로서의 예언을 하며(미래에 대한 예견,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르침) 돌아 다녔다.  고린도전서는 주후 56년경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 기록하였다.  바울이 이미 이곳을 지나 가이샤라로 왔다면 고린도 서신 기록 이후의 방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이곳 가이샤라에서 빌립의 네 딸들의 활동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녀들이 교사이든지, 예언가이든지 분명한 것은 그녀들이 활동을 했고, 바울은 이러한 그녀들에게 최소한의 한 마디는 던져 주었어야 했다.  당연히 그녀들의 활동은 제재해야 하는 것이 바울의 정당한 처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그러한 제재 조치는 전혀 없었다.  누가의 기록은 성령의 역사로 인한 이 여인들의 활동을 보고하는 것이었다. 

   이 딸들은 아버지인 집사 빌립에게 대단히 자랑스러운 존재들이었다.  결코 아버지의 말씀을 거절하지 않았고, 순종의 여성으로서 모습을 갖춘 딸들이었다.  모두가 하나님의 딸들로서 여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주석가들은 이 빌립의 네 딸들을 다음과 같이 불렀다.  첫째 여 선지자, 둘째 복음 전도자, 셋째 예언의 은사자가 그것이다.  이러한 별칭들은 모두가 교회에서 그녀들의 활약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도 그의 책에서 당당히 이 여선지자들을 그렸을 것이다.  그녀들이 별반 가치 없는 여성들이었다면 교회사에서 그녀들의 이름을 기록할 까닭은 무엇인가?  빌립의 네 딸들은 시대적 상황에 당당히 맞섰던 여인들이었다.  하나님의 은사가 이러한 일들을 가능하게 했고, 아버지 빌립의 도움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그녀들은 자신들의 직분을 잘 감당하였으며, 여성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전부는 아니지만 독신의 은사도 받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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